요르단 페트라의 유적 보존 전략: 지역 공동체 참여를 통한 지속 가능한 관광 행정
"장밋빛 사암 도시 페트라는 인류 고고학의 기적이자, 수세기 동안 이곳을 지켜온 베두인 공동체의 터전이다. 요르단 정부는 유적을 '박제된 과거'로 두지 않고, 지역 주민을 보존 행정의 주체로 포용함으로써 세계문화유산 관리의 새로운 상생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 본 리포트는 페트라 개발 지역 자치국(PDTRA)의 통합 관리 계획과 유네스코(UNESCO)의 지역 공동체 참여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서론: 인류의 유산과 원주민의 삶, 그 공존의 시험대
요르단 남부 사막에 위치한 페트라(Petra)는 나바테아 문명이 건설한 거대한 암벽 도시로, 전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고고학 유적지 중 하나다. 그러나 페트라의 행정적 고민은 단순히 돌을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유적지 내부와 주변에는 수 세대 동안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베두인(Bedouin) 부족들이 존재하며, 이들의 경제 활동과 유적 보호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페트라 행정의 핵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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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 보존과 지역 공동체 상생 행정의 상징, 페트라 사암 유적 |
과거의 유적지 관리가 주민들을 구역 밖으로 이주시킨 채 물리적 차단에 집중했다면, 현대의 페트라는 '지역 공동체의 참여'를 보존의 동력으로 삼는다. 유적을 가장 잘 아는 지역민들이 가이드가 되고, 유적 보호의 파수꾼이 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관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유적지를 관광 상품으로만 소비하는 것을 넘어, 지역 사회의 문화적 자부심과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포용적 행정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본 리포트는 페트라 개발 지역 자치국(PDTRA)의 통합 거버넌스 체계를 분석하고, 고대 수로 복원과 같은 과학적 보존 기술과 베두인 공동체의 행정 참여 사례를 조명한다. 이를 통해 역사문화 도시를 관리하는 행정이 어떻게 유산의 가치와 지역민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 그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1. 페트라 개발 지역 자치국(PDTRA)의 통합 거버넌스
페트라의 행정 혁신은 2009년 출범한 페트라 개발 지역 자치국(PDTRA, Petra Development and Tourism Region Authority)이라는 독립적인 거버넌스 체계에서 시작된다. 과거 여러 부처로 분산되어 있던 유적지 관리 권한을 하나로 통합하여, 보존과 개발이라는 상충하는 가치를 단일 행정 체계 안에서 조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독립적 행정 및 재정권: 요르단 총리 직속 기구로서 유적지 입장료 수입의 일정 비율을 보존 사업에 직접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 구축
- 통합 관리 계획(IMP): 고고학적 보존, 관광 마케팅, 도시 계획을 하나의 청사진으로 묶어 부처 간 이기주의와 중복 투자 원천 차단
- 규제와 진흥의 균형: 유적지 내 불법 건축을 엄격히 통제하는 동시에, 주변 6개 마을의 인프라 개선을 병행하는 입체적 행정 집행
거버넌스의 중심: 보존을 위한 플랫폼 구축
PDTRA의 핵심 가치는 페트라를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의 엔진'으로 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유네스코(UNESCO) 등 국제 기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현지 행정 인력의 전문성을 높여 데이터에 기반한 고고학적 관리 기준을 수립했다.
이러한 통합 거버넌스는 위기 시 더욱 빛을 발한다. 홍수나 지정학적 불안 등 돌발 변수가 발생했을 때, PDTRA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유적 보호 조치와 지역 사회 지원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페트라의 보존은 강력하고 일관된 행정 주체의 탄생에서부터 그 동력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2. 유적지 보존을 위한 과학적 행정 기술
페트라의 유적지는 거대한 사암 암벽을 깎아 만든 특성상 자연 풍화와 수해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사막의 불규칙한 돌발 홍수(Flash Flood)는 고대부터 페트라를 위협해온 고질적인 문제였다. 요르단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바테아인들의 고대 지혜와 현대의 첨단 기술을 결합한 과학적 보존 행정을 펼치고 있다.
- 고대 수로 시스템의 현대적 복원: 2,000년 전 나바테아인들이 구축한 댐과 수로를 정밀 복원하여 유적지 내부로 유입되는 홍수 경로를 사전에 차단
- 3D 레이저 스캐닝 및 디지털 트윈: 알 카즈네(The Treasury) 등 주요 유적을 1mm 단위로 스캐닝하여 미세한 균열과 침식 속도를 실시간 모니터링
- 지표 투과 레이더(GPR) 탐사: 지표면 아래 숨겨진 미발굴 유적의 구조를 파악하고, 관광객 동선 설계 시 유적 훼손 가능성을 사전 검토
데이터 기반의 관리: 직관을 넘어선 정밀 행정
과거에는 유적 훼손이 발생한 뒤에 대처하는 '사후 복구' 중심이었다면, 현재 페트라는 '예방적 모니터링'에 집중한다. 기상 관측 데이터와 유적의 진동 센서를 연동하여 기후 변화가 사암의 강도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일 입장객 수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식이다.
이러한 과학적 행정은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된다. 기술적 타당성을 바탕으로 세계은행(World Bank) 및 각종 국제 기구의 보존 펀드를 유치하고, 이를 다시 고도화된 장비 도입과 인력 양성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확립했다. 결국 페트라를 지키는 것은 고고학적 열정을 뒷받침하는 정교한 데이터와 기술력이다.
3. 지역 공동체 '베두인'의 행정 참여 및 권익 보호
페트라의 행정 시스템은 유적지 보존의 파트너로서 베두인(Bedouin) 공동체를 관리 체계의 핵심부로 포용했다. 과거 유적 보호를 명목으로 진행된 강제 이주 정책이 지역 사회와의 깊은 갈등을 초래했던 과오를 반성하고, 현재는 이들의 생존권 보장과 유적 보호 의무를 행정적으로 결합하는 상생 정책을 펼치고 있다.
- 전통 활동의 배타적 권리 인정: 유적지 내 낙타·마차 운송 및 특산물 판매권을 원주민 부족에게 독점 부여하여 외부 자본에 의한 수익 유출 방지
- 주민 대표 자문위원회 운영: 유적지 관리 계획 수립 단계부터 부족 대표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 집행의 현장 수용성 제고
- 정주 여건의 질적 향상: 이주 단지인 '움 사훈(Umm Sayhoun)' 마을에 특화된 교육 및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여 유적 보호에 따른 사회적 보상 이행
자발적 파수꾼으로의 변화: 소속감의 행정적 가치
과거 관리의 대상이었던 주민들은 이제 공식 등록된 전문 가이드 및 보존 요원으로 활동하며 유적을 지키는 실질적인 인적 자산으로 기능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직접 관리한다는 자부심은 불법 발굴이나 훼손 행위를 공동체 스스로 감시하고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규제력이 되었다.
포용적 거버넌스의 정착은 관광객에게 생생한 문화적 서사를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민에게는 유산 보존이 곧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암벽의 물리적 수명을 연장하는 기술적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유적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행정 안으로 끌어들이는 공존의 설계다.
4. 지속 가능한 관광 모델: 교육과 인식 변화
페트라의 보존 행정은 물리적 복원을 넘어, 유적을 대하는 방문객과 지역 사회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교육적 접근을 병행한다. 요르단 정부는 유적 보호가 강제된 규율이 아닌 자발적인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저영향 관광(Low-impact Tourism)' 가이드라인을 수립하여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 차세대 고고학 가이드 양성: 지역 청년들을 전문 해설사로 육성하여 단순 노동 중심의 관광 산업을 고부가가치 지식 서비스업으로 전환
- 디지털 기반 에티켓 캠페인: 유적 터치 금지, 지정 경로 준수 등 보존 수칙을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제작하여 방문 전 학습 유도
- 윤리적 관광 환경 조성: 유적지 내 운송 동물의 복지 상태를 행정이 정기 점검하고 관리자 교육을 의무화하여 관광 서비스의 질적 표준 확립
인식의 전환: 박제된 유산에서 살아있는 역사로
현지 학교 교육 과정에 페트라의 역사와 보존 윤리를 포함시킨 행정적 결단은 미래 세대를 잠재적인 보존 전문가로 키워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유적지를 단순한 수익원으로 보던 과거의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 스스로가 인류 공통 유산의 '수호자'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점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단기적인 규제보다 강력한 힘은 유적의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에서 나온다. 방문객들이 보존 기금 기부나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행정적 통로를 넓힘으로써, 페트라는 전 세계인이 함께 관리하고 책임지는 '참여형 유산'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5. 사회 생태적 복원력(Socio-ecological Resilience) 강화
페트라의 행정 시스템은 단순한 시설 유지를 넘어, 외부의 급격한 충격에도 지역 사회와 유적지가 공멸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복원력(Resilience)'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다. 지정학적 불안이나 팬데믹처럼 관광 수요가 급감하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행정 주체인 PDTRA는 다각적인 경제적·행정적 완충 장치를 운용하고 있다.
- 수익 재배분 기금 운용: 입장료 수익의 일부를 적립하여 관광 비수기나 위기 시 지역 주민의 최소 생계를 지원하고 유적지 유지 보수 인건비로 우선 집행
- 경제 구조의 다각화 시도: 관광업에 편중된 지역 경제를 개선하기 위해 베두인 전통 공예품의 온라인 수출 지원 및 친환경 농업 기술 전수 사업 병행
- 디지털 거버넌스 확장: 가상 현실(VR) 투어 등 비대면 콘텐츠를 강화하여 물리적 방문이 불가능한 시기에도 유적의 가치를 전파하고 대안적 수익원 창출
공존의 지속성: 환경과 사회를 아우르는 회복력
장기적인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유적 보호와 주민 복지가 하나의 생태계로 움직여야 한다. 이에 요르단 당국은 스마트 시티 기술을 주변 마을에 도입해 만성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재생 에너지를 활용한 유적지 운영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환경적 복원력까지 함께 강화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위기 앞에서도 '사람과 유적을 분리하지 않는 정책적 끈기'는 페트라를 지탱하는 가장 실질적인 힘이다. 암벽의 물리적 침식을 막는 기술적 완성도만큼이나, 그 유산을 둘러싼 사회적 토양을 비옥하게 가꾸는 행정적 노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페트라는 영구적인 장밋빛 도시로 남을 수 있다.
종합 결론: 유적은 돌이 아니라 '사람'이 지키는 것이다
페트라의 사례는 인류의 거대한 유산을 보존하는 힘이 정교한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그 유적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참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요르단 정부는 주민들을 규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행정의 동반자로 격상시킴으로써, 보존과 생존이라는 인류학적 난제를 상생의 기회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성과 요약] 페트라 상생 거버넌스의 주요 지표
| 핵심 영역 | 행정적 성과 | 지역 사회 가치 |
|---|---|---|
| 통합 관리 | PDTRA 중심의 단일 컨트롤 타워 구축 | 신속한 의사결정 및 정책 일관성 확보 |
| 경제 상생 | 원주민 우선 고용 및 수익 환원 기금 | 지역 사회 자립도 및 복지 인프라 강화 |
| 과학 보존 | 고대 수로 복원 및 3D 모니터링 | 예방적 관리를 통한 유적 수명 연장 |
정책 제언: 한국형 문화유산 거버넌스를 향하여
경주, 공주, 부여 등 역사적 자산과 주민의 삶이 밀접하게 연결된 한국의 지자체들에게 페트라의 사례는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유적 보호를 위한 일방적인 규제는 주민들의 소외를 부르고 결국 보존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페트라처럼 지역민을 전문 인력으로 육성하고 관광 수익이 마을의 복지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할 때, 고대 유적은 현대의 도시를 먹여 살리는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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