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팔라완 해양 보호구역(MPA) 사례 분석: 어업 생산성 40% 증대의 비결
"필리핀의 '마지막 생태 보루'라 불리는 팔라완은 1990년대 초반, 파괴적인 남획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붕괴 위기 앞에서 '과학적 해양 보호구역(MPA) 설정'이라는 행정적 결단을 내렸다. 이는 단순히 어획을 금지하는 규제를 넘어, 보호구역의 생태적 회복이 어민의 실질적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블루 이코노미(Blue Economy)'의 성공적인 거버넌스 모델을 제시한다."
※ 본 리포트는 팔라완 지속가능발전위원회(PCSD)의 환경 관리 가이드라인 및 유네스코(UNESCO) 생물권 보전지역 이행 보고서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서론: 필리핀의 마지막 생태 보루, 팔라완의 '해양 주권' 선언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 제도 중에서도 팔라완(Palawan)은 독보적인 생물 다양성을 간직한 해양 행정의 요충지다. 과거 다이너마이트와 청산가리를 이용한 파괴적 어업 방식으로 산호초가 고사 위기에 처하자, 팔라완 주정부는 중앙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주 전체를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강력한 해양 보호구역(MPA)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러한 행정적 개입은 인간의 간섭을 차단한 공간이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하고, 다시 공동체의 자원이 되는지를 증명하는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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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적 구역화와 주민 참여형 관리를 통해 세계 최고의 해양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팔라완의 해안 경관 |
팔라완의 해양 행정은 '금지'가 아닌 '상생'에 방점을 찍는다. 험준한 석회암 절벽 아래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는 철저히 계산된 구역화(Zoning) 전략에 의해 보호되며, 이곳에서 발생하는 생태적 부가가치는 지역 어민과 관광 종사자들에게 공정하게 분배된다. 이는 환경 보호를 경제적 손실로 간주하던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생태계 보존 자체가 가장 지속 가능한 투자임을 시사하는 행정적 전환점이다.
본 리포트는 팔라완이 해양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지속 가능한 어업을 안착시킨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구역 설계부터, 보호구역 밖으로 어족 자원이 퍼져나가는 '스필오버(Spillover)' 효과의 행정적 활용, 그리고 환경 사용자 요금제(EUF)를 통한 재정 자립 사례를 통해 해양 자원 관리를 고민하는 타 지자체에 실질적인 정책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1. 과학적 구역화(Zoning): ECAN 기반의 계층적 해양 관리 설계
팔라완 해양 행정의 핵심 전략은 '환경 임계 구역 네트워크(ECAN, Environmentally Critical Areas Network)'라 불리는 정교한 공간 관리 시스템이다. 팔라완 주정부는 1992년 제정된 '팔라완 전략적 환경 계획(SEP)' 법에 따라 섬 전체의 육상과 해양을 생태적 민감도에 따라 3가지 핵심 구역으로 분류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경계 설정을 넘어, 각 구역의 생물학적 가치와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행정적으로 조율한 계층적 거버넌스의 정점이다.
- 해양 핵심 구역(Marine Core Zone): 산호초 밀집 지역 및 멸종위기종 서식지로, 연구 목적 외 모든 인간의 활동과 어획이 전면 금지되는 '노-테이크(No-take)' 공간
- 완충 구역(Buffer Zone): 핵심 구역을 보호하는 외곽 경계로, 비파괴적인 관광 활동(스노클링, 다이빙 등)과 엄격히 허가된 전통 어업만이 허용되는 완충 공간
- 다목적 이용 구역(Multiple Use Zone): 주민들의 거주와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구역으로, 지속 가능 어법을 준수하는 조건 하에 어업 행위가 보장되는 실생활 공간
판타이 다가트(Bantay Dagat): 주민 참여형 해양 감시 거버넌스
법적 구역 설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집행력이다. 팔라완은 중앙 정부의 해양 경찰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 어민들로 구성된 해양 파수꾼인 '판타이 다가트(Bantay Dagat)' 시스템을 공고히 구축했다. 이들은 지자체(LGU)로부터 공식적인 권한을 부여받아 보호구역 내 불법 다이너마이트 어업이나 무단 진입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며, 주민들 스스로가 자원 보존의 주체라는 강력한 소속감을 갖게 한다.
이러한 과학적 구역화와 주민 참여형 감시 체계는 팔라완 내 약 150여 개 이상의 해양 보호구역(MPA)이 실질적인 생태계 회복의 거점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행정 당국은 팔라완 지속가능발전위원회(PCSD)를 통해 각 구역의 생태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며, 변화하는 환경 조건에 맞춰 구역 범위를 조정하는 유연한 적응형 관리(Adaptive Management)를 실천하고 있다.
2. 스필오버(Spillover) 효과: 보호구역과 어업 생산성의 공생 메커니즘
팔라완 해양 행정은 '보전'을 '어업 금지'라는 단편적 규제로 정의하지 않고, 어족 자원의 생산량을 높이는 공공 투자로 접근한다. 해양 보호구역(MPA) 내부에서 인간의 간섭을 완전히 차단할 경우, 산호초와 어류의 밀도가 포화 상태에 도달하며 개체들이 경계 밖의 인접 어장으로 확산되는 '스필오버(Spillover) 효과'가 발생한다. 이는 보호구역이 일종의 '자연 부화장' 기능을 수행하여 어민들에게 지속 가능한 어획량을 보장하는 과학적 근거가 된다.
- 비파괴적 어구 보급 프로그램: 저인망이나 독극물을 이용한 조업 대신 전통적인 외줄 낚시(Handline)를 장려하며, 규격에 맞는 그물을 사용하는 어민에게 행정 보조금 지급
- 전략적 금어기 운용: 어종별 산란 주기에 맞춰 조업을 일시 중단하는 '휴식기 행정'을 실시하고, 이 기간 어민들에게 해조류 양식 등 대체 소득원 기술 교육 제공
- 수산물 이력제 및 에코 라벨링: 보호구역 인근에서 지속 가능 어법으로 채취된 수산물에 대해 주정부 인증을 부여하여 유통 단계에서의 부가가치 극대화
규제의 보상: 단기적 제한을 장기적 자산 가치로 전환
팔라완 주정부는 MPA 설정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어민들의 소득 감소 우려를 정밀한 통계 데이터 공유를 통해 정면 돌파했다. 실제 MPA 도입 후 3~5년이 경과한 지역에서 어획물의 크기와 개체 수가 보호 전 대비 평균 40% 이상 증가했다는 성과 지표를 제시함으로써, 행정 규제에 대한 주민의 자발적 순응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어민들은 불법 어업을 감시하는 동시에 보호구역 인근에서 고부가가치 수산물을 채취하는 경제적 수혜자가 된다.
결국 팔라완의 어업 행정은 자연의 자생력을 극대화하여 지역 경제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블루 이코노미'의 실천적 사례다. 무분별한 채취가 초래하는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 위해 핵심 보호구역이라는 원금(자본)을 지키고, 거기서 발생하는 이자(확산된 어족 자원)만을 취하게 하는 정교한 수탈 억제 시스템을 안착시켰다.
3. 환경 사용자 요금제(EUF): 생태적 수익의 재정적 선순환 구조
팔라완 해양 행정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재정적 근간은 '환경 사용자 요금제(EUF, Environmental User Fee)'에 있다. 이는 팔라완의 해양 자원을 이용하는 관광객과 외부 사업자에게 일종의 '보존 분담금'을 직접 징수하는 제도로, 외부 자본을 지역 생태계 복원과 사회 기반 시설에 재투자하는 수익 환원형 거버넌스의 핵심이다. 팔라완 행정청은 이 기금을 일반 예산과 엄격히 분리하여 독립적인 환경 특별 회계로 운용한다.
- 직접 징수 시스템: 엘니도(El Nido), 코론(Coron) 등 주요 관광지 진입 시 통합 환경 통행증(ETDF)을 발급하여 징수 절차의 투명성과 효율성 확보
- 보호구역 관리비 우선 배정: 징수액의 상당 부분을 해양 보호구역(MPA) 순찰대의 유류비, 산호초 복원 장비 구매, 폐기물 처리 시설 운영 등 생태적 직접 비용으로 지출
- 지역 사회 환원 사업: 어민 자녀 교육 지원, 소규모 어촌 인프라 개선 등 주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 프로젝트에 기금을 배정하여 정책에 대한 민간 지지 확보
재정 자립형 생태 관리 모델의 정착
이러한 재정 시스템은 중앙 정부나 외부 원조 기관의 예산 지원이 변동되더라도 지역 스스로 해양 생태계를 지켜낼 수 있는 '재정적 회복탄력성'을 부여했다. 특히 환경 사용자 요금제는 관광객들에게 '지불한 비용이 해당 바다를 지키는 데 즉각 쓰인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관광객 스스로가 환경 훼손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드는 행동 변화의 기제로도 작동한다.
팔라완 지속가능발전위원회(PCSD)는 EUF 수익금을 통해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모니터링 체계와 규제 집행력을 확보했다. 환경 보전이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 자금을 유치하고 지역 복지를 증진하는 독립적인 행정 도구로 자리 잡은 것이다.
4. 블루 카본 자산화와 에코 투어리즘: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해양 자산 관리
팔라완 행정의 시야는 수산 자원 보존을 넘어 지구적 과제인 기후 변화 대응으로 확장된다. 팔라완 전역에 분포한 방대한 맹그로브(Mangrove) 숲과 해초지는 육상 산림보다 탄소 흡수 속도가 월등히 빠른 '블루 카본(Blue Carbon)'의 보고다. 주정부는 이를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닌 국가적 탄소 흡수원으로 정의하여, 탄소 중립 행정의 핵심 거점으로 관리하고 있다.
- 맹그로브 숲 보호 및 식림 행정: 연안 개발 시 맹그로브 훼손을 엄격히 금지하며, 개발이 불가피한 경우 벌채 면적의 수 배 이상을 의무적으로 재식림하도록 하는 '환경 보상제' 운용
- 저영향 에코 투어리즘(Low-impact Tourism): 대규모 리조트 단지 조성을 지양하고 소규모 친환경 숙박 시설과 무동력 해양 레저를 장려하여 산호초와 해초지의 물리적 파손 방지
- 해양 가이드 환경 전문 인증제: 지역 주민 가이드들에게 해양 생태계 및 기후 변화 교육 이수를 의무화하여, 관광객에게 보전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현장 교육자 역할 부여
자연 자본의 고부가가치 전환
팔라완은 맹그로브 투어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지하 강 탐험과 같은 에코 투어리즘을 통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도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을 안착시켰다. 특히 해양 생태계의 탄소 흡수 능력이 국제적으로 높게 평가됨에 따라, 향후 글로벌 탄소 배출권 시장과의 연계를 통한 추가적인 행정 수익 창출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다.
해양 생태계를 '기후 회복력'의 핵심 인프라로 정의하는 행정적 시각의 변화는 팔라완을 단순한 휴양지에서 환경 선진 도시로 격상시켰다. 블루 카본 자산을 철저히 관리함으로써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연안 공동체를 보호하는 천연 방파제를 확보함과 동시에, 전 세계 환경 의식 있는 여행객들을 유치하는 독보적인 브랜드를 구축했다.
5. 공동체 기반 관리(CBCRM): 어민에게 권한을 이양한 자치 거버넌스
팔라완 해양 행정의 실질적인 성공은 중앙 정부의 물리적 통제가 아닌, 지역 공동체 기반 해양 자원 관리(CBCRM)라는 권한 이양 모델에서 기인한다. 팔라완 주정부는 바다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이 현지 어민들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해양 보호구역(MPA)의 관리와 운영권 상당 부분을 지역 공동체에 위임했다. 이는 행정 비용을 절감함과 동시에 주민들이 규제의 대상에서 자원의 주인으로 변모하게 만든 조치다.
- 지방정부 단위(LGU)와의 공식 협약: 마을 단위의 어촌 조직이 지방 정부와 법적 협약을 맺고, 해당 해역의 조업 허가권 관리 및 1차 감시 권한을 직접 행사
- 민·관 합동 분쟁 조정: 대규모 상업 어선의 불법 침범 시, 공동체가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행정 당국이 즉각적인 사법 조치를 취하는 긴밀한 공조 체계 가동
- 전통 지식의 행정 데이터화: 어민들이 축적한 어종별 산란 주기와 이동 경로 정보를 과학적 조사 결과와 결합하여 지역 실정에 맞는 유연한 금어기 설정
사회적 자본을 통한 불법 어업 근절
권한 이양의 가장 큰 성과는 불법 어업에 대한 상호 감시 체계의 구축이다. 과거 외부 단속반의 눈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어민들은, 이제 보호구역의 자원이 자신들의 직계 가족과 마을의 미래 소득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스스로 파수꾼이 되었다. 이웃 어민들 사이의 사회적 압력은 강력한 법적 처벌보다 효율적인 규제 도구로 작동하며 팔라완 해역의 불법 행위를 획기적으로 감소시켰다.
팔라완 지속가능발전위원회(PCSD)는 주민 교육과 행정적 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조력자 역할에 집중하고, 실질적인 현장 관리는 공동체의 자율에 맡기는 분권형 생태 행정을 구현했다. 이러한 강력한 사회적 자본은 팔라완이 외부의 무분별한 개발 압력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해양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다.
종합 결론: 생태계 회복력을 자산화한 '블루 거버넌스'의 성과
필리핀 팔라완의 해양 행정 사례는 보호구역(MPA) 설정이 경제적 규제가 아닌, 어업 생산성과 관광 가치를 높이는 '공공 투자'임을 입증한다. 과학적 구역화와 주민 참여형 감시 체계는 파괴적 어업으로 고사하던 연안 생태계를 불과 10년 만에 아시아 최고의 해양 성지로 복원시켰다. 이는 보존이 곧 개발의 기반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행정적으로 안착시킨 결과다.
[심화 부록] 팔라완 해양 보호 및 행정 성과 지표
| 구분 | 행정적 성과 및 수치 | 성과 분석 |
|---|---|---|
| 생태계 회복 | 보호구역 내 산호 피도(Coverage) 약 30% 증가 | 수산 자원 부화장 기능 정상화 |
| 어민 소득 변화 | 조업 허용 구역 내 어획량 평균 40~50% 증대 | 스필오버 효과의 실증적 데이터 확보 |
| 재정 자립도 | 환경 사용자 요금(EUF)으로 운영비 100% 충당 | 외부 예산 독립형 관리 체제 구축 |
데이터 참고:
- 해양 통계: Palawan Council for Sustainable Development (PCSD) Monitoring Report
- 경제 지표: Bureau of Fisheries and Aquatic Resources (BFAR) Palawan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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